일상

그녀를 보내주기 위한 글

냥냥펀치_ 2026. 1. 18.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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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가기가 망설여질만큼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고양이. 이사를 간 뒤 한두 번 소식을 듣고 올해부터는 아예 잊고 지냈었다. 가끔 인스타를 보며 잘 있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한번 해주고 말았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평소와 너무나 다름없는 순간에 들어온 모순적인 정보였다. 부정하는 게 아니라 문장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엥?
그러다가 마지막에 아파서 갔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가여웠고 불쌍했다. 인간보다 삶이 짧은 가여운 고양이. 그리제뜨와 있던 모든 순간들이 하나둘씩 먼지 쌓인 사진 속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떠올랐다.

처음 타지에 왔을 때 내 집 같지 않던 곳을 내 집처럼 여기게 해 준 고양이. 사실 그녀의 터전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었지만, 항상 같은 영역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위로를 줬다. 너무 더울 때, 지루할 때, 바쁠 때, 심심할 때 등 항상 그자리에 있어줬다.
특히 말을 하지 않고도 이런 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보다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말이라는 것에 내가 부여하는 가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의 문장을 듣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고, 다른 정서와 언어로 소통해야만 하는 와중에 비언어적인 요소로 소통이 가능한 생명체여서 더 각별했다.

그녀의 물과 크로켓을 챙겨주며, 배에 불룩한 주머니와 과체중을 걱정하며, 어느 날 화장실 가다 다쳐 절뚝거리던 다리를 회상하면서도 항상 그녀는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도 빗질을 안 해줬는지, 내가 해주는 빗질에 반해 빗살 소리만 내도 야옹 하면서 화장실 그 자리에 드러눕던 고양이. 스트레스를 먹을 걸로 푸는지 맨날 먹고 비만이던 고양이. 빨래하러 갔는데 가끔 그 옆 화장실애서 똥 싸고 냄새풍기며 유유히 올라가던 고양이. 사냥본능이 없는 줄만 알았는데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제법 고양이처럼 놀던 고양이. 햇빛 따라 드러눕다가 긁으면서 털을 뿌리던 고양이. 빨간 소파에 올라가기엔 너무 무거워서 한번 철퍽 올라가면 쉽게 내려오지 않던 고양이. 집에 돌아오면 그 통로너머 빨간쇼파에서 눈땡그렇게 뜨고 왔냐옹. 인사하며 내 모든걸 주시하던 고양이. 무릎에 올라오진 않았지만 소파에 앉아있으면 내 다리에 머리 어깨를 기대던 고양이. 과제할 때 스트레스 받는 내 옆에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며 코워킹하던 고양이. 가끔 내 침대에 올라와서 드러눕다가 방 한번 점검한 뒤에 다시 갈길 가던 고양이. 가끔 지하 cave 문 열면 혼자 아무도 모르게 내려가다가 갇혀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 문 열리기만 기다리던 고양이. 가족에 대해 별 감정 없는줄 알았지만 아들이 돌아오자 캐리어 안에 자리잡고 똘망하게 쳐다보며 반기던 고양이. 끝내 벌레하나 잡아주지 못해 날 이사가게 만든 고양이. 눈동자 색깔이 자기가 사는 집과 정말 잘 어울리게 예쁘던 고양이.

이 고양이가 없었다면 나는 첫해를 무사히 보내지 못했을 거고 외딴 곳에서 따스함을 느끼지 못했을 거다.
고양이의 본능이라면 불편했을 것 같던 매일 다른 손님을 맞이해야만 했던 고양이. 그러면서도 항상 조용히 반겨주던 고양이. 내가 아는 고양이와 모든게 달랐던 독특했던 고양이. 좋은 생이었길 바라고,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무거운 배랑 몸이 가벼워져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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